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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1-05 22:51 (목)
문화/관광

부처님 오신 날, 책 표지에 새겨진 ‘卍(만)’의 뜻을 읽다

능화판 문양으로 살펴보는 조선시대 책문화 속 불교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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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종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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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능화판, 창녕조씨 지산종택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대구경북종합뉴스/안동] 남재선 기자=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옛 책 표지를 장식하던 능화판 가운데 ‘卍(만)자문’이 지닌 의미를 조명하고, 조선시대 책문화에 남아 있는 불교적 상징과 전통 미감을 소개한다. 능화판은 책 표지에 문양을 찍어내기 위해 사용한 목판으로, 조선시대 전적(典籍)의 장정(裝幀, 책을 꾸미고 묶는 방식) 문화에서 실용성과 심미성을 함께 보여주는 도구이다.

책 표지에 새겨진 전통의 무늬, 능화판

능화판으로 찍어낸 표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능화표지는 표지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동시에 책을 습기와 충해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도 함께 지녔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능화표지 제작에는 황염(黃染), 곧 노랗게 물들인 종이, 배접지, 교말, 밀랍, 능화판 등이 사용되었으며, 밀랍은 문양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광택과 방습 효과를 더했다. 염색에 쓰인 황벽(黃蘗)과 치자(梔子)는 방충·항균 성분을 지녀 책의 보존성을 높여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능화표지는 조선시대 책문화가 보여주는 실용성과 심미성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책문화 속에서 널리 쓰인 卍자문

책 표지에 나타나는 다양한 문양 가운데서도 卍자문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조선 초기에는 연보상화문과 연화문이 많고 귀갑문이 바탕문으로 주로 쓰였으나, 조선 중기에 이르면 卍자문이 널리 사용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대부분 卍자문이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서 1,200여 권의 능화표지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卍자문은 전체 문양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卍자문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조선 후기에 매우 익숙하고 선호된 책 표지 문양이었음을 보여준다. 『주역천견록』과 『동의보감』 등의 표지에서도 연속 배열의 卍자문이 확인되며, 이는 이 문양이 불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의서·유서·근대 전적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였음을 보여준다.

억불의 시대에도 이어진 불교 상징의 흔적

조선시대 책 표지에 卍자문이 지속적으로 쓰인 배경은 능화표지의 연원과 무관하지 않다. 능화표지는 고려시대 사경(寫經)과 불전(佛典)의 표지 장식 전통과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되며, 경전을 장엄하던 감각이 일반 전적의 표지를 꾸미는 방식으로도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본래 卍자는 산스크리트어로 스바스티카(svastika)라 하며, 불교에서는 상서롭고 길한 뜻을 지닌 상징이자 부처의 경지를 나타내는 불심인(佛心印)으로 이해되어 왔다. 조선이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생활문화와 공예, 장정 관행까지 불교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卍자문은 오랜 시간 불교 상징으로 쓰이면서도 점차 길상성과 장엄성을 지닌 장식 문양으로 폭넓게 수용되었고, 반복 배열이 쉬운 기하학적 특성까지 더해져 책 표지 문양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卍자문은 단순한 종교 표식을 넘어,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도 전통과 미감, 실용성이 함께 작동하며 계승된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책을 꾸미는 문양에서 시대의 감각을 읽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능화판의 문양은 책 표지를 꾸미는 장식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미감, 그리고 책을 대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라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소개하는 卍자문 능화판은 우리 전통문화에 남아 있는 불교적 상징의 한 사례이자, 조선시대 책문화의 깊이와 품격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앞으로도 고전적과 책 장정 문화, 기록유산에 담긴 상징체계를 지속적으로 발굴·소개함으로써 우리 전통문화의 세밀한 아름다움과 인문적 의미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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